비자명성 조각그림 맞추기

미국 특허법에서 35 U.S.C. § 103은 특허를 받는 기술이 종래의 기술에 비추어 보았을 때 해당 분야의 통상의 기술을 가진 자에게 자명(obvious)하지 않을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세상에 이미 알려진 바와 비교했을 때 너무 “뻔한” 기술한테는 특허라는 이름의 독점적인 사용권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요건을 미국 특허법에서는 non-obviousness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는 비록 국어사전에는 없는 표현이지만 “비자명성(非自明性)”이라고 옮기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특허법이나 유럽 특허법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특허요건을 진보성(inventive step)이라고 표현합니다. 누가 봐도 자명한(obvious) 발명은 인류기술의 진보(inventive step)를 가져다 주지 않으므로 의미상으로 서로 맞닿아 있는 개념이고 법리적으로도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심사관이 제103조를 근거로 특허거절결정을 내릴 때는 두 개 이상의 인용문헌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드물지만 아래의 Arendi 사건에서처럼 한 개의 인용문헌으로 자명성에 의한 거절을 하는 것도 가능하긴 합니다.) 두 개 이상의 인용문헌을 근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통상의 기술자가 해당 인용문헌의 기술들을 조합(combine)할 이유 혹은 동기(motivation)가 존재했으며 이렇게 해서 결합된 복수의 인용문헌이 실제로 특허 청구항의 모든 구성요소를 빠짐없이 적시함을 밝혀야 합니다.

복수의 인용문헌을 조합하는 과정은 지그소 퍼즐을 맞추는 것과도 닮은 데가 있습니다. 흩어져 있는 여러 개의 퍼즐 조각들을 제자리에 끼워 맞추기만 하면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큰 그림이 보이듯이 여러 개의 문헌을 결합하고 조합하면 결합되기 전의 문헌들에 개별적으로는 나와있지 않았던 기술도 자명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퍼즐 조각을 이곳저곳에서 마구잡이로 모아다 놓으면 조각들이 서로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듯이 복수의 문헌들을 무리하게 조합하다 보면 깔끔한 밑그림이 완성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잘 안 맞는 퍼즐 조각을 무리하게 끼워넣다 보면 빈틈이 생기기도 합니다. happystock/Shutterstock.com

두 개의 인용발명이 서로 정확하게 아귀가 안 맞으면 그 결합이 헐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헐거운 결합은 제103조에 의한 거절결정을 적절하게 뒷받침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8월과 9월에 걸쳐 연방순회항소법원(U.S. 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에서 비자명성에 관한 사건이 두 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애플(Apple Inc.)이 피항소인이었습니다.

상식 선에서 해결합시다?

먼저 8월에 있었던 Arendi v. Apple 사건에서는 비자명성 판단에 관한 상식(common sense)의 적용범위를 다루었습니다.

애플은 구글과 모토롤라와 서로 손을 잡고 특허권자인 Arendi S.A.R.L.(이하 “Arendi”)의 7,917,843 특허 (이하 “’843 특허”)에 대해 특허심판(inter partes review)을 제기했습니다. ’843 특허는 첫 번째 컴퓨터 프로그램이 화면에 표시하는 문서에 등장하는 키워드를 이용하여 두 번째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터넷 등 외부 소스에서 검색을 해 주는 기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문서가 워드프로세서 문서인 경우 워드 문서의 본문에 포함된 줄과 문단의 내용을 분석한 후 주소를 나타내는 단어(street, avenue, drive, lane, boulevard, city, state 등)나 호칭을 나타내는 단어(Mr., Mrs., Sir, Madam 등), 상호를 나타내는 말(Inc., Ltd., P.C. 등), 자주 사용되는 인명 등이 등장하는 것을 감지하여 두 번째 프로그램이 이 정보를 사용해 인물 검색을 하여 첫 번째 프로그램에 주소를 삽입해 주는 등의 부가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있습니다.

한편 애플 이하 원고측이 제시한 인용발명에 의하면 문서에 전화번호가 포함된 경우 전화번호가 강조되어 표시가 되고(16), Phone #(17)라는 메뉴가 하일라이트가 되며, 풀다운메뉴(20)에 전화 걸기(Dial…) 혹은 팩스 보내기(Send fax…) 등의 메뉴가 표시되어 이것을 선택할 경우 전화를 걸거나 팩스를 보낼 수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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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발명의 1e도면과 1f도면

그런데 문제는 인용발명의 명세서에 첨부된 도면 FIG. 1f에 의하면 풀다운메뉴(20)에는 주소록에 추가하기(Add to address book…)라는 메뉴가 포함되어 있는데, 명세서의 상세한 설명에는 이 메뉴를 선택하면 “검색”이 수행된다는 내용이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부(Patent Trial and Appeal Board)는 “주소록에 추가하기” 옵션을 선택했을 시 문서에서 검출된 전화번호를 검색하는 것은 통상의 기술자라면 알 수 있는 “상식”의 범주에 포함되므로 ’843 특허는 인용발명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자명하다고 심결을 하였습니다. 퍼즐 조각의 빈 공간을 “상식”이라는 내용으로 채워 넣은 셈이죠.

그러나 심판부의 결정을 뒤집은 연방순회항소법원은 비자명성 판단에 있어 상식(common sense and common knowledge)의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Randall Mfg. v. Rea 참조) 비자명성 판단에 상식을 적용하는 경우에 유념해야 할 세 가지의 단서(但書)를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 단서는 둘 이상의 문헌을 조합하기 위한 알려진 동기(a known motivation to combine)로서 상식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청구항의 누락된 구성요소를 채워넣는 용도로는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구항에 AB라는 요소가 있는데 A요소가 나와 있는 인용문서1과 B요소가 나와 있는 인용문서2가 존재할 경우 통상의 기술자가 보았을 때 결합의 근거를 상식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다면 (예를 들어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통신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인용문서1 혹은 인용문서2A요소와 B요소를 조합할 동기가 마땅히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자명한 발명으로 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A요소가 나와 있는 인용문서1만 존재하고 B요소가 나와 있는 인용문서가 없는 경우라면 B요소를 상식만으로 대체하는 것이 역부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단서는 누락된 요소가 매우 경미한 경우에는 상식으로도 보충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한 예로는 Perfect Web Technologies v. InfoUSA 사건을 인용하였는데,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특허청구항에는 A, B, C, D에 해당하는 단계가 있었는데 이 중에서 누락된 구성요소인 D단계는 단순히 “A, B, C 단계를 반복 적용하라”에 해당되는 요소였기 때문에 그 누락의 정도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A, B, C 단계를 수행한 후 다시 A, B, C 단계를 일정 횟수만큼 반복하는 것은 통상의 기술자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본 Arendi 사건에서는 누락된 요소인 “검색”이 단순히 다른 알려진 요소들을 반복하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라 “청구된 기술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plays a major role in the subject matter claimed)”하고 이 검색이란 요소가 없어질 경우 “청구항 전체의 내용이 사실상 무색해질 정도(the claims would be almost void of content)”에 해당하므로 서면 증거의 부재를 상식만으로 메꿀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세 번째 단서는 보충하려는 대상이 조합의 동기이든 청구항 중 누락된 요소이든, 구체적인 거절이유를 제시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오로지 “상식”에만 기대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심사관이 특허를 거절하기 위해서는 거절을 하게 된 이유를 서면상의 증거와 논리정연한 근거를 통하여 일목요연하게 제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을 통째로 무시하고선 “이것은 통상의 기술자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므로 자명하다”라고 성급하게 결론만 내리고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음매가 불완전한 복수의 문헌

한편 9월에 판결이 나온 ClassCo v. Apple 사건에서는 비자명성 판단 시 둘 이상의 인용발명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느냐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ClassCo가 보유한 6,970,695 특허(이하 “’695 특허”)는 전화 통화 중 발신자 정보(Caller ID) 표시에 관한 기술을 그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695 특허에서는 전화가 걸려올 경우 통화를 연결해 주기 전에 발신자의 이름을 음성으로 안내해 줌으로써 사용자로 하여금 통화를 선별적으로 수신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695 특허의 1번 독립청구항의 구성요소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where the voice signals are processed by the called telephone to produce audio using an audio transducer at the called station,

음성 신호가 발신자 전화기에 의하여 처리되어 발신장소의 음성 변환기를 통해 음성을 발생시키는

그리고 1번 독립청구항에는 이런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the audio announcing circuit being operative to use the identity information to produce audio using the audio transducer at the called station

신원 정보를 사용하여 발신장소의 음성 변환기를 통해 음성을 발생시키는 음성 안내 회로

즉,  ’695 특허의 음성 안내 회로는 전화통화를 할 때 들리는 일반 음성 신호뿐 아니라 발신자 신원 정보까지 모두 음성으로 변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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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 특허의 제1도면.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음성 안내 회로.

한편 심사관은 두 개의 문헌 FujiokaGulick를 인용하여 자명성을 이유로 (다시말해 비자명성 특허요건의 결여를 이유로) 이 청구항을 거절했는데, 문제는 이 두 인용발명이 빈틈없이 맞아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Fujioka 문헌에는 음성 변환기가 나와있긴 했지만 전화통화 음성과 발신자 신원 정보를 모두 변환하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Gulick는 여러 가지 전화 기능을 통합한 일반적인 핸즈프리 전화기에 관한 내용을 기술했습니다. Gullick의 스피커 역시 음성으로 된 벨소리와 통화 음성을 출력했지만 발신자의 신원 정보까지 출력하지는 않았습니다. 심판부는 이에 대해 통상의 기술자라면 전화기의 스피커는 여러 종류의 음성 신호를 출력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했으리라는 이유로 거절결정을 내린 심사관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연방순회항소법원 역시 통상의 기술자라면 전화기의 스피커가 음성 벨소리와 통화음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음성을 출력할 수 있다는 Gulick의 내용에 따라 한 개의 스피커에서 통화 음성과 신원자 정보를 출력하도록 Fujioka의 내용을 변형(modify)할 수 있었으리라고 판단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대법원의 KSR 판례에 나온 “통상의 기술자”란 뻣뻣하게 한 가지 동작만 할 줄 아는 모형인간(automaton)이 아니라 통상의 창의력(ordinary creativity)까지도 갖춘 사람임을 주지시키며, 복수의 인용발명의 내용이 완벽하게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라도 성공적인 조합이 가능함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특허법 제103조의 퍼즐 조각은 그 아귀가 정확하게 맞지 않더라도 때로는 신축성 있게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 셈입니다.

상식인가 창의력인가

하지만 ArendiClassCo라는 두 사건을 나란히 놓아놓고 볼 때 과연 어디까지가 “상식의 선”이고 어디부터가 “통상의 창의력”에 해당하는 범위인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선이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판단에는 각 사건의 객관적인 사실관계뿐만 아니라 이를 판단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도 어느 정도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호해 보이는 법의 경계선을 법원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한 뼘 한 뼘씩 재단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미국법의 재미있는 관점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