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침해소송에서 laches(소제기의 태만)을 이유로 침해 방어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지난 3월 21일 나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대법원은 연방순회항소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뒤집고 laches가 침해방어방법으로 이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소제기의 태만(laches)이란 소를 제기함에 있어서 부당하고 불리한 지연으로부터 피고를 보호하기 위해 영미 형평법(equity) 상 발달된 것으로서, 흔히 이해하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그 권리 행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개념입니다. 소멸시효는 일정 시간동안 권리 불행사가 계속된 경우 그 권리가 소멸되는 법령에 의해 정해진 기간인 반면, laches는 법령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권리자의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것이 형평법상의 이치에 맞는지 법원의 재량에 의해 결정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본 사안에서 2003년 SCA는 First Quality에게 그들의 성인용 기저귀 상품이 SCA의 특허 (U.S. 6,375,646)를 침해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First Quality 는 자신의 특허(U.S. 5,415,649)가 SCA 특허보다 선행하며 따라서 SCA 특허가 무효라고 대응을 합니다. 이후 SCA로부터 First Quality으로의 더 이상의 서신 송달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7월, SCA는 First Quality에 알리지 않은 채 미국 특허청에 First Quality의 ‘649 특허에 비추어 자신의 ‘646 특허가 유효한지 대해 재심사(reexamination)를 신청하였고, 2007년 3월 특허청은 SCA의 ‘646 특허의 유효성을 인정하였습니다. 이후 SCA는 2010년 8월 First Quality 에 대해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합니다.

한편 특허법 286조는 소제기 시점으로부터 6년이전의 침해행위에 대하여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특허법 286조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Except as otherwise provided by law, no recovery shall be had for any infringement com¬mitted more than six years prior to the filing of the com¬plaint or counterclaim for infringement in the action.”

SCA의 경우 처음 First Quality에 침해 경고를 한 2003년으로부터 7년이 지난 2010년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이를 이유로First Quality는 laches를 이유로 침해소송이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 지방 법원은 2013년 7월 16일 First Quality 의 주장을 받아들여 약식판결(summary judgment)을 내렸습니다. 이에 SCA는 연방항소순회법원에 항소하기에 이릅니다.

한편 2014년 5월 19일 대법원은 Petrella v. Metro-Goldwyn-Mayer, Inc. 사건에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는 laches를 방어방법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었습니다. 바로 전설적인 권투영화 ‘분노의 주먹(Raging Bull)’에 관한 저작권 침해를 둘러싼 사건인데요, 이 영화의 각본은 복싱 챔피온 Jake LaMotta 와 Frank Petrella가 공동으로 1963년 등록 저작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MGM(Metro-Goldwyn-Mayer)은 이 각본을 바탕으로1980년 ‘분노의 주먹’ 영화를 제작하였고 현재까지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원고는 2009년 저작권 침해소송을 제기하면서 2006년으로부터 3년간 발생한 손해배상 및 침해금지를 요청하였습니다.

미국 저작권법 17 U.S.C. 507(b)조는 “No civil action shall be maintained under the provisions of this title unless it is commenced within three years after the claim accrued” 라고 하며 청구권이 생긴 이후 3년 이내에 소를 개시하지 않으면 소 제기가 불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저작권법 507(b)조에서 이와 같이 권리행사의 소멸시효(statute of limitation)를 별도로 명시하고 있음을 강조하였고, 이러한 경우 3년의 소멸시효 이내에 제기된 손해배상청구의 소(예컨대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3년 이내의 저작권 침해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laches는 방어방법으로 사용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즉, Petrella사건에서 대법원은 형평의 원칙상 방어방법으로 인정되는 laches는 소제기의 근거가 된 법률이 권리행사의 소멸시효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경우를 위한 것으로 판단하였고, 따라서 소멸시효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저작권법507(b)조의 경우 그 3년의 소멸시효 이내의 손해배상청구의 소에 대해서는 laches를 이유로 권리행사를 제한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처음 침해행위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3년이 도과하여 침해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소송이 제기된 일로부터 3년 이내의 손해액에 대해서 저작권자의 소급적 구제를 인정한 것입니다.

SCA Hygiene 사건을 심리한 연방순회항소법원은 2015년 9월 18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저작권 사건과 달리 특허침해 소송에서는laches를 방어방법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특허법 286조가 소제기 시점으로부터 6년이전의 침해행위에 대하여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 것은 소제기 자체를 금지하는 소멸시효 규정이 아니라 손해배상의 범위를 제한하는 규정에 불과한 것이라 본 것입니다.

이에 대법원은 7-1 판결로써 연방항소순회법원의 판결을 번복하면서, 특허법 286조는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규정이 아니라 소멸시효 규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즉, 특허법 286조는 저작권법 17 U.S.C. 507(b)조와 동일한 의도로 신설된 조문으로서 침해행위로부터 6년 이내에 소가 제기가 된 경우라면 태만을 이유로 기각할 수 없다는 게 국회의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가 제기된 시점으로부터 6년 이내의 침해로 인한 손해액에 대해 특허권자가 배상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First Quality는 소멸시효는 청구사유(cause of action)가 일어난 날로부터 그 이후로의 날짜로 기산하는 반면, 특허법 286조에 명시된 6년의 기간은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소급(runs backward)하여 과거로 기산되므로 소멸시효 규정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First Quality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멸시효 규정은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거꾸로 기산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look-back limitations period”).

이번 대법원 판결로써 특허권자는 특허침해 사실을 알았거나 경고장을 보낸 이후 어떠한 정당한 이유 없이 특허침해소송 제기를 상당 시간 지연한 경우에도 소 제기일로부터 6년 이내에 발생한 손해액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를 이유로 악의적인 특허권자의 남용, 즉 침해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거나 시장에서 성공을 얻을때까지 기다린 후 막대한 손해배상액을 주장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래 latches 방어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부당하고 이유없는 지연(delay) 뿐만 아니라 지연된 소제기로 인한 손해(prejudice)를 피고가 입증해야하고, 입증의 어려움 때문에 그 사용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오히려 특허소송에서 특허의 무효성 주장, 금반어 및 특허 미표시 등의 방어주장이 그 동안 효율적이었다는 점에서 본 판결로 인한 특허소송실무에서의 큰 지각변동은 없을 거라 예견됩니다. 또한 SCA Hygiene 사건에서도 피고가 laches 외에도 형평법상 금반어(equitable estoppel)를 주장했었으나 이를 충분히 뒷받침할 사실관계가 부족했다는 게 주요한 패소 이유로 여겨집니다.